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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 혜원처럼 나만의 작은 숲을 가진 거라면

by oneulbreakfast 2025. 4. 1.
출처: 네이버 영화 - 포토 - 포스터

 

오래도록 사랑받는 힐링 영화

 
  국가 애도기간으로 연말 시상식이 모두 취소되던 2024년의 마지막날이었습니다. 시상식에서의 카운트다운을 볼 수 없어 새해를 어떻게 맞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좋아하는 영화 한 편을 보며 해넘이의 순간을 보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어떤 영화를 볼까 곰곰 생각하며 그동안 보았던 영화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보았던, 보고 또 보아도 좋은 영화를 골랐습니다. 임순례 감독이 만들고, 김태리 배우가 주연으로 활약한 영화 <리틀 포레스트>였습니다. 러닝타임 내내 초록빛 시골 풍경이 펼쳐지고, 싱그러운 제철 재료로 요리하고, 또 맛있게 먹는 장면들은 볼 때마다 언제나 저에게 힐링 그 자체입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힐링 영화로 오래도록 사랑받는 <리틀 포레스트>에 대한 감상을 전해드립니다. 
 

몸이 기억하는 엄마의 레시피 따라

  
  영화의 처음은 한 겨울의 중심으로 들어갑니다. 주인공 혜원은 서울에서 준비하던 임용고시에 낙방하고 오랜만에 본인의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고등학생 시절까지 엄마와 머물던 시골집에 도착하지만, 엄마는 애진작에 떠났고, 찬장에 먹을거리도 없습니다. 꽁꽁 언 집을 녹이기 위해 불을 지피고, 흰 눈에 덮인 채 꽁꽁 언 배추와 파를 잘라냅니다. 아직 먹을만한 배춧잎과 파를 넣고 뜨끈한 배춧국을 끓여냅니다. 국물 한 술에 꽁꽁 언 혜원의 마음도 스르르 녹아내립니다. 혜원은 역시 집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을까요. 다음날 그는 찬장에 남은 밀가루로 수제비를 만들고, 어제 먹고 남은 배추를 수제비에도 넣고, 전으로도 부칩니다. 큼지막한 수제비를 한 술 떠서 입 안에 밀어 넣는 혜원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집니다. 배추전을 손으로 슥슥 찢어 입에 넣자 아삭거리는 식감에 혜원의 입에서는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몸이 꽁꽁 얼었을 때
수제비를 한 입 먹으면..
[혜원의 만족스러운 신음]
[혜원의 탄성]
[배추전이 아삭거린다]

 
  (돌아왔다는 소식을 알리지도 않았는데도 어떻게 알고) 초등학교 동창이자 이웃집 동네친구인 제하와 은숙이 불쑥 찾아옵니다. 그동안 혜원은 친구들에게 연락 없이 이따금 시골집에 돌아왔다가 다시 말도 없이 사라지곤 했습니다. 은숙은 그런 혜원이 못마땅하지만, 반가운 마음은 어쩔 수 없어 꼬옥 안아줍니다. 제하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다 때려치우고 부모님의 과수원을 물려받아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제하는 혜원이 이번에는 왠지 오래 머물 것 같아 보였는지 귀여운 강아지 '오구'를 주고 갑니다. 아니 뗀 굴뚝에 연기 날까, 역시나 근처 사는 고모도 찾아옵니다. 고모는 며칠 있다가 갈 거라는 혜원의 말을 흘려 듣고는 당신의 집으로 데려갑니다. 여전히 배고픈 혜원은 고모가 차린 밥을 허겁지겁 먹습니다. 그리고 혜원은 고모가 챙겨준 반찬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고모: 천천히 먹어, 체하겠다.
[소 울음이 들려온다]
고모: 얘, 서울 가더니 얼굴이 왜 이렇게 상했어. 아유, 천천히 먹으라니까.
혜원: 맛있어요.
고모: 아유, 치.. 깻잎도 좀 먹어봐

 
  고향으로 왜 내려왔냐는 은숙의 물음에 혜원은 배가 고파서였다고 답합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혜원은 임용고시를 준비하며 편의점 알바로 생활비를 벌고, 끼니는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웁니다. 하지만 먹으려던 도시락은 이미 상한 지 오래되었고, 냉장고에는 말라비틀어진 식재료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습니다. 혜원의 서울 생활은 고단함과 허기짐으로 점철되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땅에서 나는 제철 재료로 엄마와 함께 요리하고, 그렇게 만든 제철 음식을 나눠먹는 생활이 일상이던 혜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다시 집밥 먹고 힘이 난 혜원은 집 마당에 쌓인 눈을 쓸고, 창문을 활짝 엽니다.
 

나만 돌아왔다.
아무것도 찾지 못한 채.
엄마는 답을 찾았을까?

 
   엄마와 함께한 어린 시절은 너무나 소중하지만, 매정하게 떠나버린 엄마가 혜원은 그저 밉기만 합니다. 엄마는 혜원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무섭게 훌쩍 떠나버립니다. 엄마가 왜 그렇게 떠났는지 이유가 궁금하지만 알 수 없습니다. 엄마 없이 혼자 보란 듯이 잘 살아내겠다는 오기로 서울로 떠났지만, 결국 혜원은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돌아온 자리에 엄마는 없고, 엄마의 레시피만이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엄마가 만들어준 시루떡을 만들어 봅니다. 쌀가루를 곱게 갈고, 팥을 보글보글 끓이고, 색을 내기 위해 과일과 채소를 이용하고, 뭉근해진 팥을 빻습니다. 시루에 색을 입은 쌀가루를 층층이 쌓고, 맨 위에 팥을 얹고, 뜨거운 증기로 떡을 찌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시루떡이 완성됩니다. 몸이 기억하는 엄마의 레시피에 따라 한 끼를 정성껏 차리고, 친구들과도 함께 나누어 먹습니다.

겨울만 보내고 올라가기엔
너무 억울하잖아.
긴 겨울을 뚫고
봄의 작은 정령들이 올라오는
그때까지 있으면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긴긴 겨울밤, 엄마가 만들어 먹곤 하던 막걸리(혜원은 식혜)도 만들어 봅니다. 어린 시절, 엄마의 막걸리 맛이 궁금해 한 모금 먹어보던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시큼하고 쿰쿰한 어른의 맛. 혜원은 밥을 짓고, 지은 밥으로 술을 빚는 과정마다 계속해서 엄마를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엄마의 레시피따라 만든 맛있는 막걸리를 친구들과 함께 나눠 먹으며 서로의 꿈을 이야기합니다. 회사생활에 지쳐있던 제하는 해답을 가지고 이곳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혜원은 더 이상 이곳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듯 떠나왔다고 고백합니다. 모두가 취해버린 밤, 혜원은 오구에게 아니, 스스로에게 넌지시 봄까지 더 있어보고 싶다고 말해봅니다. 혜원은 그렇게 겨울 지나 봄, 여름, 가을까지 사계절을 오롯이 나며 답을 찾아 나갑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 포토 - 스틸컷


어떤 계절이 깊어가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는 마음이면


  달고 단단한 양파는 초가을에 땅속에서 시작됩니다. 가을이 무르익는 시월에 '옮겨심기'를 하고, 줄기가 제법 올라오면 '아주심기'에 들어갑니다. 그렇게 긴긴 겨울을 나면 둥근 봄이 알알이 여문다고 합니다. 잘 여문 봄처럼 양파처럼 나는 어디쯤에 심겼을까 궁금해집니다. 아무래도 아주심기의 시간은 아득하기만 합니다. 상한 편의점 도시락 같은 하루하루를 버텨내다가 속은 속대로 망가지고, 몸은 점점 중력에 순응한 채로. 양념통닭 뜯으며 영화 보고 위로받는 저는 그저 한없이 작아지기만 합니다. 영화를 보는 사이 새해가 밝았고, 전화기로 친구와 새해 인사를 주고받았습니다. 새해에는 저도 혜원처럼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설렘 반 기대 반이 됩니다. 어떤 풍경이 예쁜지, 어떤 술이 맛있는지, 어떤 순간이 행복한지, 어떤 음식이 제철인지, 어떤 계절이 깊어가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는 마음이면 괜찮을까요. 혜원처럼 나만의 레시피, 작은 숲을 가진 거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곶감이
벌써 맛있어졌다는 건
겨울이
깊어졌다는 뜻이다.

 

 
▷영화정보
감독: 임순례 / 각본: 황성구 / 원작: 이가라시 다이스케 <리틀 포레스트> / 제작사: 영화사 수박 / 배급사: 메가박스(주)플러스엠  / 개봉일: 2018.02.28 / 러닝타임: 103분 / 배우: 김태리, 문소리, 류준열, 진기주 등 / 장르: 드라마
 
 
▶ 영화 <리틀 포레스트>은 웨이브(단품구매), 유플러스 모바일TV(단품구매), 쿠팡플레이(단품구매), 애플TV(단품구매), 티빙(스트리밍), 왓챠(스트리밍), 넷플릭스(스트리밍)를 통해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