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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노라: 석류처럼, 빛처럼, 밝은 (스포 주의)

by oneulbreakfast 2025. 3. 24.

운명처럼 찾아온 (나만의) 올해의 영화

  작년에 개봉했지만 기회를 놓쳐서 올해는 반드시 보기로 마음먹었던 영화가 있었습니다.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거의 모든 부문에 후보로 올랐던 영화이기도 합니다. 시상식이 열리기 전에 꼭 보기로 마음먹었던 바로 션 베이커 감독의 영화 <아노라>입니다. 이 영화를 보자마자 운명처럼 (나만의) 올해의 영화가 될 것이라 예감했습니다. 심지어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 5관왕의 쾌거를 이룬 사실은 더없이 기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화 <아노라>는 아카데미의 주요 부문인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각본상, 편집상을 수상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영화와 사랑에 빠졌을까요?
바로 영화관에서요.
영화를 보면서 관객과 함께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함께 웃을 수 있는 경험입니다.
함께 울고, 소리 지르고, 함께 싸울 수 있죠.
어쩌면 망연자실한 침묵 속에 함께 앉아 있을 수도 있고요.
그리고 세상이 매우 분열된 것처럼 느껴질 수 있는 시기에
이것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이것은 집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공동체적 경험입니다.


  <아노라>로 감독상을 수상한 션 베이커 감독의 영화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가득한 수상소감 중 한 부분을 따왔습니다. 그는 <플로리다 프로젝트>, <탠저린> 등으로 이미 잘 알려진 감독이기도 합니다. 그는 그동안 소외된 사람들의 삶에 주목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풀어냈고, 그 결실을 이렇게 이뤄내면서 수상소감을 통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즐거움에 대해 강조했습니다. 지금 이제 상영관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이 영화와 사랑에 빠지고 싶은 분들은 반드시 영화관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영화에 대한 감상을 나눠볼까 합니다. 

힘껏 내달리는 좌충우돌 로드무비

  영화는 시작부터 적나라한 알몸으로 춤추는 스트리퍼들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은 전혀 야하게 보이지 않고, 그저 고단한 노동자로 보일 뿐입니다.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베테랑 애니가 있습니다. 그녀가 바로 오늘의 영화 <아노라>의 주인공입니다. 잔뼈 굵은 애니는 능숙하게 밤을 새워가며 자신의 일을 프로답게 해냅니다. 이른 아침 퇴근길에 오르는 애니는 추레한 차림으로 전철에 오른 채 도심을 벗어나 외곽으로 향합니다. 기찻길 옆이라 기차 소리가 잘 들리는 2층집 주택이 그녀가 친구와 함께 사는 곳입니다. 그녀는 2층에 있는 자신의 방에 들어오자마자 암막커튼을 치고, 안대 낀 채 곧바로 잠에 듭니다. 그렇게 고단한 하루의 끝을 마감하는 애니의 하루는 여느 직장인의 일상 그 자체입니다.

  이반 : 한 가지 제안이 있어요. 나 하나만 바라봐 주는 것.
애니 : 15달러. 현금, 선불로.
이반 : 콜
애니 : 콜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러시아 재벌 2세 이반. 손님이었던 그는 애니를 보고 첫눈에 반하고, 그녀를 집으로 부릅니다. 애니는 (단독 주택인데 엘리베이터까지 있는(?!)) 엄청나게 호화스러운 집을 보고 놀랍니다. 이반은 애니를 마음에 들어하고, 그녀와 함께 있고 싶어 1주일간의 계약연애를 제안합니다. 이반은 자신의 집에서 파티를 열고, 친구들에게 애니를 소개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갑자기 친구들과 함께 라스베이거스로 여행을 떠납니다. 여행지에서 한껏 달아오른 둘은 급기야 결혼식까지 올립니다.

이반 : 내 아내거든요!
애니 : 우리 결혼했어요!

 

  초고속 결혼식을 마친 이반과 애니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결혼 소식을 외치며 기뻐합니다. 갑자기 신데렐라가 된 애니는 4캐럿 다이아몬드 반지 끼고, 디즈니랜드로 신혼여행 가는 꿈을 꿉니다. 하지만 애니의 아메리칸드림은 얼마 못 가 산산이 부서지고 맙니다. 러시아에 있는 이반의 부모가 둘의 결혼소식을 알게 되고, 길길이 날뛰며 혼인 무효를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반의 부모님은 그들의 하수인 3인방까지 이반의 집으로 보냅니다.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온 3인방의 등장에 겁에 질린 이반은 애니를 버려두고 맨몸으로 줄행랑을 칩니다. 홀로 남겨진 애니는 무너진 삶에 대 혼인 무효는 있을 수 없다고 완강히 저항하고, 하수인 3인방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녀와 한바탕 전쟁을 치릅니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흐른 뒤 그들은 이반을 찾아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반을 찾는 목적은 서로 다르지만, 한 팀이 되어 이반의 행방을 찾기 위해 밖을 나섭니다. 어느새 영화는 순식간에 좌충우돌 로드무비로 힘껏 내달립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 포토 - 스틸컷

 

아노라, 석류처럼, 빛처럼, 밝은

 

  마침내 애니와 하수인 3인방은 이반을 찾아냅니다. 그를 발견한 곳은 그녀가 오래도록 일하던 클럽이었습니다. 결국 애니는 아메리칸드림에서 벗어나 제자리로 돌아오고 만 겁니다. 약에 취한 탓인지 정신을 못 차리는 이반을 데리고, 그의 부모님에게로 향합니다. 자신을 구해주리라 믿었던 이반도 결국 다른 손님과 다르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애니는 크게 실망하고 좌절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이반의 어머니는 애니를 무시하고 하대합니다. 하지만 당당함을 잃지 않는 애니는 씩씩하게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옵니다. 애니는 결국 다시 기찻길 옆 집으로 돌아갑니다. 하수인 3인방 중 한 명이었던 이고르가 애니를 집까지 데려다주는 임무를 맡습니다.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의 이고르는 필요 이상으로 애니를 챙겨줍니다.

난 애니보다 아노라가 좋아.
석류, 빛이라는 뜻과 밝다는 뜻도 있어.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에서 그녀는 자신만의 동굴로 다시금 꼭꼭 숨어버립니다. 그리고 이고르에 대한 경계심을 끝까지 놓지 않습니다. 그러나 애니는 이고르에게서 이반을 비롯한 여느 다른 남자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받게 됩니다. 남다른 그의 모습에 애니의 경계심이 서서히 풀립니다. 그렇게 아무도 없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애니를 향한 이고르의 시선이 빛나는 길을 냅니다. 이반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장면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애니를 향한 이고르의 시선은 한결같이 따뜻합니다. 옷을 얇게 입어 추운 애니에게 스카프를 주고, 모든 게 무너진 기분으로 가라앉은 그녀에게 한 잔의 술을 조용히 건넵니다. 그리고 이고르는 그녀의 진짜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 줍니다. 아노라, 석류처럼, 빛처럼, 밝은.

 

 


 

▷영화정보

감독: 션 베이커 / 각본: 션 베이커 / 제작사: 필름네이션 엔터테인먼트, 크레 필름 / 배급사: 네온, UPI 코리아 / 개봉일: 2024.11.06 / 러닝타임: 139분 / 배우: 마이키 매디슨, 마르크 예이델시테인, 유리 보리소프, 카렌 카라굴리안 / 장르: 드라마

 

 

▶ 영화 <아노라>는 에무시네마, 라이카시네마, 아트하우스 모모, 메가박스, CGV 등에서 상영중이며, 웨이브(단품구매), 유플러스 모바일TV(단품구매), 쿠팡플레이(단품구매), 애플TV(단품구매), 왓챠(단품구매)를 통해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